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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린은 권력가의 여자로서 국내의 크고 작은 연예업과

뷰티업과 모델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서울 장안에서 내놓아라하는 호텔 나이트클럽을 서너 개를 운영했고

자기의 영혼을 다 바쳐 사랑하던 사람이 이루지 못했던 영화 사업에도 막대한 투자를 했다.

 

은밀한 조사

채린의 집은 평수가 120평을 훨씬 넘었으며 워커힐 호텔 근처 전망이 좋은 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오성급 호텔 주방장 서너 명이 채린의 주방에서 분주하게 요리를 하고 있었다.

박 부장은 귀한 손님들과 미팅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채린의 집을 이용하곤 했다.

채린은 그날만큼은 박 부장의 여자로서 손님들에게 우아하고

품위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채린의 역할이기도 했다.

채린, 오늘은 특별한 손님이 오실거요! 내가 지금까지 당신을 보았던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오.

필리핀의 라모스 장군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에디토 장군 말이요?

차기 정부의 실세이기도 하니 당선이 잘 접대해주기를 바라오.”

박 부장은 여자들의 섬세한 감성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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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명령이고 듣는 사람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이 박부장의 법칙이었다.

채린은 짧은 미소로 박 부장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래요? 당신이 좋아하시는 분들을 저도 좋아한다는 것 아시죠?

군인의 여자는 남편 명령에 따르고 명령을 지킨다. 어때요?”

채린은 이 남자가 자기에게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따라주길 바라는가를

이제는 조금씩 그와 살을 섞어가면서 몸으로 느껴가고 있었다.

어미 같은 모성애를 함께 안겨주는 채린에게 그도 모든 사랑을 다 쏟고 있었다.

박 부장의 초대에 참석한 에티토 장군은 서로 절친한 사이였다.

박 부장은 언제나 공식적인 소개를 하듯

채린을 자기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라고 에디토 장군에게 소개를 했다.

에디토는 박 부장과는 통역을 두고 대회를 나누었지만

채린은 유창한 영어로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자 에디토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날 둘의 만남이 채린의 운명을 또다시 바꿔 놓을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한편 며칠 전부터 각 부서의 수석들이

주재하는 청와대 수석회의실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중앙정보부 대공분실 등 정부의 정보당국의 수장들의 빗발치는

긴박한 보고에 대한 처리방안을 놓고 각 부서 장들이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김광기 정무 수석이 무거운 분위기를 의식한 듯 긴박한 보고사항에 대한 첫 화두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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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간에 나도는 소문은 정치권력을 총칼로 뺏은 군부의 세력들이

각개 부처에 배치되어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에게 압박을 가하며

이권투구에 전념하여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으며.

영부인과 밀착한 관계를 내세우며 현 정부 실세들이 합류하여 경제적 이권을 취하기 위해

민생치안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하니 이일을 각하께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근심이 매우 큽니다.”

수석회의실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도

정 여사로부터 뇌물의 입김을 씌지 않은 사람들이 몇이나 있었겠는가.

한때는 중앙정보부의 막강한 자리에 앉자있던 자가 정 여사의 남편이 아니었던가.

예리하고 면도날처럼 차갑고 냉철한 김광기 수석은 단호한 결정을 회의에서 마무리 지었다.

정 여사의 남편이 옛 중앙정보부의 높은 위치에 있었던 만큼

다른 부서에서 은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령이 내려져

경찰청 특별 수사대에 이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라는 것이다.

김광기 수석은 회의 보고서를 긴급히 작성하여 대통령에게 중보(중한 업무보고) 긴급 보고를 하게 되었다.

전병환은 사무관의 보고를 받고 김 수석의 중보가 뭣일까?

하는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여 사무관이 대통령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김 수석은 허리를 반쯤 숙인 채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전병환은 한 쪽 손을 높이 치켜 올리며 김 수석이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그래, 급한 중보가 있다던데, 급한 일이라도 일어난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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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사안이 아니면 중보로 보고하지 않는 김 수석이니만큼

그의 중보는 긴박한 사안임에 틀림없다는 직감이 들었는지

대통령은 평소 보고를 받는 자세보다 약간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관계기관의 중복적 보고에 의하면

친인척 중 누군가에 의해 지하 사채시장을 혼란시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뭐라고? 친인척 중에서! 누가 사채시장을 혼란시켰다는 게야?

아니! 우리 친척들 중에서 그만한 인재가 있나?”

전병환은 김 수석의 보고에 의아심을 가지며 매우 놀라는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 김철 전 중정차장의 부인이신 정 여사께서

사채시장을 혼란시켰다는 긴급보고가 올라와 있습니다.”

뭐라고?”

전병환은 경악스럽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 여자가 어째서 내 친인척이야. ?”

각하, 영부인과 인척관계를 내세우며 계획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그래? 피해액은 얼마나 되나?”

, 지금 보고 내용으로 봐서는 수 천 억에 미치고 있습니다만,

조사를 해봐야 정확한 피해액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수사는 진행시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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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리에 경찰청 수사대에 수사지시를 내렸습니다.”

잘했어, 잘했구먼. 국민들 여론은 어때?”

파장이 클 것 같습니다. 정 여사가 영부인과 워낙 친한 관계라고

소문을 퍼뜨려놔서 피해를 입은 기업인들도 그런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은 것 같습니다.”

김 수석은 전병환의 고뇌를 누구보다도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평민당 김대중 총재가 일본을 방문하여

전병환의 광주학살사건을 연일 국내외 기자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부마항쟁 사태로 수십 명의 대학생들이 군인들의 무차별 총격에 의하여

사살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무고한 광주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의 항거를

전병환 군사정권은 총과 대검으로 진압하며 살해했다.

시민들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일그러져 쓰레기 더미 속에 버려져 있었다.

전병환은 즉시 김 수석에게 여하를 불문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철저하게 가하여 엄벌하라는 긴급명령을 하달하였다.

군사정권의 실세들이 정 여사의 돈을 안 먹은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며칠 후 정 여사는 수사기관에 의해 긴급 체포되었다.

언론과 방송은 연일 정여사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이러한 대형 경제 사고를 놓칠 리 없는 평민당과 민주당은 김대중과 김영삼 총재의 이름으로

전병환 정권의 부도덕성에 대하여 국내외 외신기자들에게 신랄한 비판의 기사를 연일 송부했다.

김대중의 지지자들은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을 향하여 전병환 정권의 악랄성에 대한 메시지를 거듭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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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의회가 전병환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전문을 전병환 정부에 보내왔다.

김 수석과 박 부장은 내외로 불붙기 시작하는 여론의 질타를 막기 위하여

불철주야 언론인들과 정치인들을 만나 여론을 잠재울 수 있는 묘책을 찾고 있었다.

전병환과 군부의 실세들은 과거 군사정권의 주체들이 그래 왔듯이 또다시

국민들의 눈과 입을 막을 수 있는 김대중과 연계된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유성삼 간첩단 체포 사실을 발표했다.

그것이 한민통 사건이었다.

 

도피와 정착

정 여사가 검찰로 송치되던 날 워커힐 채린의

집 서재에서는 박 부장이 청장의 수사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정 여사의 수많은 은익 재산이 어디로 흘러들어 갔는지 흔적이 보이지 않았지만

정 여사의 진술서에는 채린의 이름이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박부장은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를 않았다.

채린이 박 부장이 즐겨 마시는 허브차를

예쁜 찻잔에 담아 차반 위에 얹어 서재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진한 향기가 박 부장의 코에 스며들었다,

향기가 좋지요?”

그럼, 좋구 말구! 하지만 나는 채린의 향기가 더 좋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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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부장의 눈에는 채린은 언제 보아도 싱그러운 한 송이 포도같이 상큼함을 주는 여인이었다.

채린도 박 부장이 얼마나 자기를 절실하게 사랑하고 있는지를 가슴속 깊이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었다.

박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 채린을 앉힌 후,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한 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채련을 바라보며 애잔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채린은 직감적으로 박 부장이 무엇인가 자기에게 중요한 말을 하려든다는 것을 감지하고

아빠, 너무 심각한 얼굴 짖지 마세요! 겨우 몇 해 만에 산적에서 벗어나

미남 얼굴이 되었는데 그런 표정을 지으니까 또 산적같이 보인다.”

박 부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채린의 몸을 꽉 끌어안으며 힘차게 포용했다.

채린, 나를 사랑하지? 나는 당신을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해.

당분간 필리핀으로 가 있어요. 에디토 장군에게 당신이 당분간 머물 집도 부탁해놨어.

빨리 서둘러.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정 여사 일로 당신이 수사 대상에 올라서 검찰 조시를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아

당분간 안정될 때까지 거기에서 편히 쉬고 있어.

그러면 내가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까 자주 찾아가면 되잖아. ? 내 말 알겠지?

내일 아침 비행기 표를 준비해뒀으니까 빨리 출국해야 돼!”

박 부장은 애절한 목소리로 채린을 이해시키며 채린의 몸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누가 먼저라고 말할 것도 없이 둘의 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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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가진 자가 그 권력의 힘을 잃은 후에 닥쳐올 피해를 사랑하는 사람이

입게 될 것을 예견하고 그녀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 박 부장은 현관 앞에 대기 중인 두 대의 검정 벤츠 차에 첫 번째 차에는

채린과 체구와 흡사한 채린의 친구를 태웠고 다른 차에는 채린을 태워 출발시켰다.

박 부장은 어제 남부지방검찰청의 검사장으로부터 정 여사와 관련이 있는

채린을 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어 하루만 같이할 시간을 얻은 것이라 초조한 마음이었다.

아빠! 진심으로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웠어요.”

그 말을 하려고 머뭇거렸어바보 같이안녕 채린.”

박부장은 도청이 되는지 전화를 끊어버렸다.

채린을 태운 비행기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채린이 필리핀에 도착해 에디토의 후원으로 오늘의 기반을 이루기까지 십여 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 * *

남태평양의 물길을 따라 천혜의 휴양지로 가꾸어진 세부의 바닷가,

에메랄드색의 푸른 바다와 태평양의 맞바람을 받아 알맞게 몰아치는 파도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몇몇의 서퍼들이 밀려오는 파도 위에서 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겹겹이 몰아치는 파도의 포말을 따라 온몸이 드러나 보일 듯한

비키니를 입은 한 여성 서퍼가 곡예를 하듯 서핑 보드위에서 파도를 타며 해변 가로 밀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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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끝자락에서 여인이 타고 있던 서핑보드가 기웃거리며

물가로 떨어져 파도와 함께 휩쓸려 해변 가로 밀려들었다.

여인은 머리를 한두 번 흔든 후 긴 머리를 두 손으로 뒤로 넘기며

서핑보드를 왼손에 끼고 물가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상반신이 서서히 클로즈업 되었다.

한 걸음 한걸음 해변 가로 걸어 나올 때마다 물에 잠겨있던 그녀의 몸매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하며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밀짚모자를 갚게 눌러쓴 한 사내가 촬영 장비를 손에 쥐고 있는

열댓 명의 스텝들 사이를 비집으며 물기에 젖어있는 여인의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사내는 여인의 서핑보드를 받아 쥐며 말했다.

혜린씨! 세부 물맛이 어때? 수고했어. 정말 멋진 작품이었어!

혜린씨가 아니고는 이렇게 예술적으로 파도를 타는 작품을 만들어 낼 수가 없어!”

젊은 촬영감독은 파도위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연기자에게 치하의 말을 건넸다.

스텝들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몇 시간째 파도에

지친 혜린의 몸을 큰 타월로 감싸 앉고 탈의실 쪽으로 데리고 갔다.

촬영을 마친 일행들은 숙소인 리조트 월드마닐라 맥심 호텔로 돌아왔다.

그날은 혜린에게 평생 잊을 수없는 악몽의 날이었다.

인기 절정의 한 연기자의 타락이 시작된 날이라고 할까!

몇 해 전 혜린이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냈으며 필리핀을 오가며

바나나 수입상을 크게 하는 언니가 찾아와 로비에서 혜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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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린은 반가운 마음으로 로비로 내려가 그녀를 만났다.

혜린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연기자였다.

혜린아, 정말 예뻐졌구나! 나 여기 있어도 너 나오는 드라마는 한편도 안 빼고 다 본단다.

어쩜! 그렇게 하나도 안변했니? 너는 세월을 거꾸로 먹고 있구나? 아무튼 반갑다. !”

채린은 호들갑을 떨어가며 혜린을 부추기는 말만 되풀이 했다.

서울에서 혜린이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매니저 겸 물주를 잡아 주던 언니였다.

수완이 좋기로 소문난 여자였고 그녀의 손만 거치면

안 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처리되었다.

채린이 강남에서 제일 큰 나이트클럽과 영화사를 오픈하면서,

혜린이 연기생활로 벌어놓은 모든 재산을 다 쏟아 넣고, 정여사 일에 관여되어

필리핀으로 도망치다시피 달아난 이후혜린은 그녀가 벌려 놓은 사업체를 정리하며

많은 채무를 뒤집어쓰고 그 빚을 갚느라 수년간 많은 고생을 했었다.

혜린으로서는 그때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채린을 따라 호텔 로비로 나서자,

우람해 보이는 건장한 사내들이 다가와 고개를 굽실거리며 움직임을 주시했다.

혜린이 낯선 사내들의 출현에 약간 머뭇거리는 동작을 취하자 이를 지켜보던 채린이 반색을 하며,

어머! 혜린이가 놀랐는가 보구나? 혜린아! 마닐라의 밤은 무서운 도시야!”

현관 입구에는 검정색 벤츠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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